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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영화 <그녀(her)> 감상

Vanary 2014. 8. 7. 02:25




[사진 출처 : IMDb


호아킨 피닉스와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주연한 영화 <her>를 봤습니다.


보는 내내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라는 문구가 떠올라서 이 영화 홍보문구였나? 싶었는데

검색해보니 <500일의 썸머> 홍보문구 일부를 비틀어 떠올렸던 모양이네요.



 

  간략히 말해 이 영화는


한 남자가 인공지능 OS와 사랑에 빠지며 시작되고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인간끼리의 사랑만 해도 할 이야기는 태산입니다.

여자는 금성에서, 남자는 화성에서 왔다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각각 다른 생명체인 것 같다'는 이야기로 고민한 영화는 이미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전자 생명체와 인간의 사랑을 보여주며 '서로 다른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납득하고 다시 고민합니다.

서로 다르다 못해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도, 때문에 사랑을 느끼는 규모와 방법도 다른 두 개체가 만날 때, 도대체 사랑이란 뭘까요?


일본에서 게임 캐릭터와 결혼한 오타쿠가 화제가 되었었는데, 그걸 이해할 수 있겠다 싶은 영화였습니다.


 

  영상미와 음악, 배우들


(1)

무덤덤한 영상 가운데 형광색을 집어넣어 시각적 자극을 주는 미묘한 이질감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아름다웠구요.


'무덤덤한 영상'이라고 느끼게 한 주역은 배경과 소품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검색하고서야 극중 배경 도시가 LA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LA나 뉴욕같은 미국의 대도시보다 상해 도심이 자주 등장합니다. 동방명주 인근이 보이기도 하고, 시내 쇼핑가가 보이기도 하는데요,

신기하게도 서양과 동양의 대도시가 섞이면서 발달한 대도시이지만 지나치게 상상력이 발휘되지는 않은 '무난한 미래도시' 배경이 완성됩니다.

 소품들도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OS가 등장하는 시대 치고는 첨단기기는 무엇하나 등장하지 않습니다. 현재 있을법한 거대 타블렛과 손거울처럼 생긴 작은 스마트폰, 보급형 일체형PC느낌의 데스크탑 정도가 본 영화에 등장하는 스마트기기의 전부입니다.

 

미래 도시지만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배경이 'SF+드라마'인 이 영화에서 오히려 '드라마'가 도드라지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2)

중간중간 나오는 곡들이 영화 분위기에 잘 어울렸고, 극중에서 여주인공이자 OS인 '사만다'가 남주인공 '시어도어'에게 들려주고픈 감정이 관객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스칼렛 요한슨이 맡은 '사만다'의 목소리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속삭이는 듯, 온 세상을 기뻐하는 듯 찰랑이는 목소리에 보는 내내 마음이 들썩였어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보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듭니다. 콧수염과 헝클어진 머리, 어정쩡한 배바지를 영화 내내 입고 나오지만

영화 초반부의 이혼 후 찌질남에서 영화 후반부 사랑에 기뻐하고 고민하는 아름다운 순정남까지 캐릭터의 변화가 자연스럽습니다.



 

  보고 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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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제에 대한 개인적 정리

"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나는 온전히 네 것, 너는 온전히 나의 것'인 것만이 사랑인 건 아닌 것 같다.

상대방을 얼마나 점유하는가로 사랑을 판가름해서는 안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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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에 누운 아이폰, 특히 그 안의 시리가 다르게 보입니다. 옆에 폰을 뉘여놓고 팔베개를 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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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에서 스타로드역을 맡은 크리스 프랫이 등장합니다. '가오갤'에 출연하며 살을 쫙 뺐다더니 확실히 이전 영화에서는 알아보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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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사랑'에 집중한 영화입니다. 사랑하고, 이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3가지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지 않았지만 엔딩 장면에서 극중 비슷한 실연을 경험한 사람이 수 만 명은 되겠지요.

죽는 사람 몇 나왔겠다 싶어 마지막 장면 보면서 내내 불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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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의 행복과 고민을 함께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꼭 한번씩은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보면 좋을 작품


(1) <이터널 선샤인> - 영화



[사진 출처 : IMDb


두 남녀가 사랑하고 이별하고 추억을 지우고 되찾고 다시 만납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서로의 기억까지 완전히 지워버리지만 그래도 한 바퀴 돌아 다시 만나는 연인을 보며,

<her>에서 느낀 아쉬움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2) <사야의 노래> - 비주얼 노벨

 


[엔하위키 미러 항목 참조(링크)]


19금 비주얼 노벨 게임으로, 끔찍한 내용과 저항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공포가 섞여있어 거부감이 큰 작품이지만

큰 줄기는 <her>와 같습니다. 한 남자와 인간이 아닌 한 여자가 만나 그 둘의 사랑에 관해 고민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내용.


대신 이 작품 주인공들의 고민은 자신들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지만,

<her>의 고민은 자신들의 관계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시스템에게 손을 뻗어 한단계 진화하며 끝을 맺는다는 차이가 있겠네요.